이슬람국가인 OO에 온지도 어언 10여년이 지났습니다. OO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만큼 낯선 땅이었고 하나님께서 왜 여기로 보내셨을까 많은 번민과 기도로 보냈던 초창기에 비하면 지금은 어느 정도 낯익은 땅이 되었고 아하~ 이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싶은 일들이 사역 가운데 나타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한인교회의 부름을 받고 왔지만 장기체류 교민 한 가정 없이 모두들 2~3년 근무하고 돌아가는 교우들을 보면서 정들자 이별이라고 그렇게 마음이 무겁고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무슨 사인이라도 좀 보여달라고 하는 참으로 엉뚱한 기도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5년 전쯤 신학교의 학장이라는 분한테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정신이 번쩍 뜨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OO에 신학교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학장님이 왜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나 대화를 해보니 신학교에 히브리어를 가르칠 교수가 없는데 와서 히브리어를 가르쳐 줄 수 없냐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정도의 거리에 자리한 학교인데 학생이 50~60명 정도 되는 그야말로 이슬람 국가에서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설렘과 긴장감으로 첫 수업시간을 어떻게 끝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여전하기만 합니다. 신대원 학생 25명 앞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와 히브리어를 처음 배우는 신학생들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는 일입니다. 처음 OO에 올 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 신학교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고 설사 그런 학교가 있다 하더라도 한국인 목사한테 와서 히브리어를 가르쳐달라는 일이 일어나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게 3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에 이번에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이슬람 대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이슬람 대학에서 왜 나를 만나자는 것인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대학교의 학과장이란 분이 설마 나를 해치려고 만나자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약속을 정하고 만났는데 내가 한인교회 목사인 것도 들어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인즉슨 학교에 히브리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와서 히브리어를 가르쳐 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 학생의 전화번호를 주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물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고민만 해서 뭐하나 한번 직접 물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더니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언제 어디서 볼까, 내가 학교로 가는게 좋겠다 했더니 웬걸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것입니다. 통화 중에 또 고민이 되는 겁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만나는게 좋지 왜 굳이 우리 집으로 오고 싶다는 걸까, 이거 오라해도 되는걸까 고민이 돼서 나는 학교에서 보자하고 학생은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럼 집으로 오라고 해서 집에 2명의 학생이 왔는데 사실은 학생이 아니라 교수였습니다. 교수가 왜 히브리어를 배우려고 하느냐 물었더니 자신이 비교종교학과 교수인데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의 원전을 읽고 싶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도교수는 히브리어를 몰라서 자기는 히브리 성경을 읽지 못하고 영어 성경을 읽으며 학위를 받았지만 자기한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그래도 히브리 성경의 원문의 맛을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슬람 대학의 무슬림 교수이지만 그 생각이 너무나 기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서재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굳이 우리 집으로 오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서재를 둘러보며 보고 싶은 책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스라엘에서 공부할 때 제대로 밥도 못 먹으면서 구입한 책들인데 그냥 줄 수는 없어서 원하는 책이 있으면 기꺼이 빌려주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슬람 대학교의 교수님들 다섯 명과 성경 히브리어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그 중에 한 분이 학부생들한테도 배우게 하면 좋겠는데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나야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가르쳐 주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학부에 성경 히브리어 과목을 정식으로 개설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학부에 성경 히브리어가 학점이 인정되는 정식과목으로 개설되었고 지난 달부터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1993년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시커먼 이민 가방 하나 싸들고 이스라엘로 날아가 11년을 히브리어와 씨름했었는데 그것을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OO에서 이렇게 쓰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 분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하심에 소름이 돋을 만큼 놀라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OO에 수억 명이 넘는 사람이 있고, 수도에 재학생이 약 3만명이나 되는 유력한 대학교에 히브리어를 가르칠 교수가 없어서 한국에서 온 그것도 기독교 목사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도록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가르치는 나의 능력인데 한국 기독교의 목사를 대표한다는 심정으로, 또한 잘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성경 히브리어 문법 영어책 10여권과 히브리 대학에서 교재로 쓰는 히브리어 책 5권을 그야말로 달달 외우다시피 매일 읽으며,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라는 격언을 마음에 새기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합당한 도구로 쓰임받기 위하여 오늘도 침침한 눈을 부비면서 두손 모아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보다도 기도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낍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가을에 한국에 가서 뵙겠습니다.

OOO목사 올림